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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우리들의 기억상자 속 아버지와 맛동산

브런치스토리 2017.02.25 00:57


오랜만에 대형마트에 갔다가 할인행사중인 과자 코너에서 반가운 과자를 보았다. 어릴 때부터 즐겨먹었고 커서도 이따금 사다먹게 되었던 맛동산! 튀긴 과자에 당액과 땅콩을 버무려 달콤하면서도 고소하고 바삭함을 느끼며 쪼개먹는 맛이 있는 추억의 과자, 맛동산은 지금은 맛동산락이라는데 그 맛이 여전하다. 요즘은 봉지과자를 사면 질소가 과자보다 더 많이 들어있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봉지안의 과자가 아주 가볍고 잘다. 맛동산도 다양한 사이즈가 있는데 큰 봉지는 꽤 값이 나간다. 어쨌든 오늘 맛동산을 사다 먹으며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지나가고 있다. 우리들의 기억상자 속에서 맛동산은 꽤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맛동산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는것은 나의 아버지 때문이다. 아직도 나는 장녀로써 아버지를 다정하게 '아빠'라고 부르기에 호칭을 그것으로 적는다. 아빠는 내가 어릴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시면서 술을 한잔씩 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기분 좋게 취해 들어오는 아빠의 모습은 무척 재미있기도 했지만 때때로 기다려지는 모습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아빠는 술을 드시면 기분이 좋아 우리에게 용돈을 팍팍 주시거나 시장에서 파는 바삭바삭한 통닭같은 맛있는 음식을 사들고 오셨기 때문이다. 맛동산은 그 중 단골상품이었다. 아빠는 다음날이면 지갑이 텅 빈 것을 보고 지갑에 있던 돈을 다 어디에 썼는지 기억해 내려고 애쓰고 계셨다. 나와 동생은 착하게 받은 돈을 돌려드리기도 하고 '얼마는 줬으니 뺏기 없기'라며 아빠와 거래를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 대목이다. 우리는 모이면 가끔 그때를 이야기하며 흐뭇하게 웃곤 한다.


아빠는 흥건하게 취하시면 술이 조금 아쉬우셨던건지 집에와서 한잔 더 하고싶어하셨다. 그럴때 아빠가 주로 품에 안고 오시는건 바로 '소주와 맛동산'이었다. 그 때마다 맛동산은 언제나 두봉지였다. 하나는 아빠의 술 안주, 하나는 우리의 간식이었다. 우리에게 모두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는 아니었을까! 아빠도 그만큼 맛동산을 아주 좋아하셨다. 아빠는 소주를 드시고 우리는 옆에서 맛동산을 먹으며 서로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깊어가는 밤을 시간가는줄 모르고 보내곤 했다. 물론 우리것을 다 먹고나면 아빠의 안주에 자연스레 손이 가는것은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이치였다. ^^;;;



맛동산은 여전한 그 맛이다. 언제먹어도 "그래 이맛이야!" 할 수 있는 머리가 기억하는 맛.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것들이 있다. 어릴때의 추억, 아빠의 다정함 같은 것들... 그리고 맛동산의 맛!


어려서 연탄보일러를 쓰던 때, 그게 몸에 좋은줄 나쁜줄도 몰랐던 시절이었지만 겨울이 되면 아빠가 고구마를 조금 두껍게 잘라 연탄불 위에 석쇠를 놓고 구워주셨다. 우리는 그걸 '고구마 빵'이라고 불렀다. 겉은 잘 구워지고 속은 폭 익어서 사근사근 씹히는 고구마의 맛! 그 따뜻함과 달콤함은 기억속에 여전하다. 그런 소소한 간식을 만들어주시고 나누어 먹으면서 아빠도 자신의 어릴적 이야기와 어머니(할머니)와의 일화를 자주 풀어놓곤 하셨다.


그런 아빠의 다정함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대로다. 시골에 가면 본인이 직접 담그신 된장도 퍼주시고, 직접 말린 시래기도 일일이 냉동실에 한끼용으로 나눠 보관하시다가 꺼내 주신다. 들깨를 사서 직접 방앗간에 가 오래 기다리면서 짜온 들기름(아직도 꼭 방앗간에 가서 지켜봐야한다고 생각하시는 어르신들이 많다.)을 친척들에게 일일이 나눠주시기도 한다. 묻지도 않고 직접 대파를 한묶음 따듬어서 내미시기도 하고(따듬어서 가야 흙도 없고 편하다고), 그때 그때 집에 있는 야채들을 바리바리 싸주신다. 쌀, 고춧가루, 들기름, 다진마늘도 모두 아빠께 의지하고 살아서 직접 구입해본지가 오래되었다.


아빠는 힘든일을 하시면서도 우리와 다정하게 놀아주셨고 지금도 여전히 내게는 남들에게 '친정 엄마'라고 불리는 존재처럼 다정하게 모든 사랑을 다 해 부족한 자식을 챙겨주시는 분이다. 내게도 아이가 생기고 엄마가 되고 보니, 때로는 내가 아빠에게 받은 사랑만큼 내 아이에게 배풀어 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지만 나는 한참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는 우리에게 참 대단한 아버지셨다. 그리고 그런 아빠의 다정함은 '외할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내 아이에게 전해지고 있고, 연탄보일러의 '고구마빵' 대신 화목보일러에서 맛있게 구워진 '군고구마'로 그렇게 내리사랑으로 계속되고 있다.


이야기가 조금 빠졌는데, 아무튼 아빠는 지금도 맛동산을 좋아하신다. 그리고 내 아이도 맛동산을 보고는 반색을 하며 맛있게 먹는다. 맛동산의 맛과 추억은 우리 가족의 세대를 넘어 되물림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맛동산 맛을 보니 아빠와 어릴 때 나누던 이야기들과 아빠가 기분이 좋아 흥얼거리시던 노래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다음에 아빠께 갈 때는 소주와 맛동산, 그리고 추억도 챙겨가야겠다. 추억은 때론 더 끈끈한 미래의 무엇을 우리에게 선사 해 주기 때문일까? 깊은 밤, 아빠는 주무시고 계실시간. 기억상자를 만지작 거리다 이내 깊은잠에 들겠지만...  아빠가 몹시 보고싶은 그런 밤이다(지금 기분은 '맛동산먹고 즐거운 파티!' 노래라도 흥얼거려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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