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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비 오는 날 더 운치 있는 제주절물자연휴양림

이번 제주 여행은 무더위와 씨름을 해야만 했다. 일기예보는 계속 우산 그림만 보여주고 있었지만 막상 여행 내내 큰 비는 밤늦게나 새벽에 잠시 내렸을 뿐, 낮에는 내리지 않는 대신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전국에 국지성 호우가 마구 쏟아질 때, 제주만 비가 아닌 열대아로 찜통이었기에 친구들은 비를 피해서 다닌다며 운이 좋다고 말해 주었다. 그런데 그 운이 다 했던 걸까. 마지막 날 아침부터 조금씩 내리던 비는 멈추지 않고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비행기 시간 전에 어디를 들르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공항에서도 가깝고 비 오는 날에 가면 분명 더 좋을 이 곳, 절물 자연 휴양림을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찾았다.



제주 절물 자연휴양림의 입장료는 어른 1천원, 어린이 3백원이고 주차비는 2천원 정도로 저렴하다. 들어서면서 차에서 미리 표를 끊고 주차한 뒤, 휴양림 입구에서 다시 표를 보이고 입장해야 한다.


작년 가을 혼자 했던 제주 여행 마지막 날에도 이렇게 비가 내렸다. 서귀포에서 머물다 공항으로 향하던 길에 516 도로를 타고 안개 가득 앞이 보이지 않는 빗길을 비상등을 켜고 달리느라 애를 먹었다. 그리고 들렀던 곳이 바로 이 곳. 비가 오면 비자림에 가곤 했는데 절물 휴양림에 와서는 비가 내려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 흙밭이 아닌 촉촉한 테크를 걷는 것도 아주 운치가 있어 이곳에 반해버렸다. 촉촉한 침엽수에서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이 참 아름답게 보였다. 빗길을 뚫고 왔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평온하고 멋진 곳이었다.


피톤치드는 봄, 그리고 아침에 가장 많이 나온다. 식물도 성장과 소멸을 거치면서 자신의 에너지를 계절에 따라 조절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톤치드 효과를 누리고 싶다면 봄날의 아침을 노리는 게 좋다. 과거에 아토피에 효과가 있다고 해 아이를 데리고 편백나무 숲을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정말 효과가 있다. 그렇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 효과는 이내 사라져 버린다. 산골에 있는 아토피 마을에 몇 달씩 들어가 살던 사람들도 좋아져서 돌아가지만 집으로 가면 이내 재발을 경험한다. 그러나 피톤치드를 내뿜는 숲은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고 정신건강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고 개인적으로 굳게 믿고 있다.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로 난 이 길을 걸으며 머리 속의 모든 생각을 잠시 비운다. 세상의 시름도 잠시 잊을 수 있을 만큼 아름답다. 힘들었던 일, 걱정거리들로 아파했던 심신이 치유받는 느낌이 든다. 비에 젖은 흙냄새와 풀내음까지도 마치 어떤 치료제와 같은 기분이 든다.




이 곳에선 여러 가지 표정과 크고 작은 모양의 다양한 장승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큰 소리로 웃기, 건강박수치기 등 건강에 좋은 테마들로 꾸며져 있다. 잠시 걷기에 몰입하며 장생의 숲길을 빠른 걸음으로 단숨에 걸어보는 것도 좋다. 등으로 흐르는 땀줄기가 보람차고 반갑다.



아이와 이 곳을 꼭 같이 와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운치 있는 숲길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이 곳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추고 있어 절로 웃음이 나는 목공예 작품이 맞아주는 '목공예 체험장'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나뭇가지와 솔방울 등 목재료들로 만든 작품들을 함께 구경하고 목공예 체험도 함께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연의 재료들로 만든 신기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고, 앉아서 체험을 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시간이 부족해 작품집과 재료를 구입해서 가지고 왔다. 아이의 방학과제 만들기 재료로 활용할 생각이다. 체험을 하고 싶은지 물으니 아이는 나무 가운데 구멍을 뚫고 피리를 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도구를 보고 흥미를 보였다. 그림을 그리거나 무늬를 넣고, 가지 등을 이용해 목공풀로 붙여 꾸밀 수 있다. 여유가 된다면 아이와 함께 시간을 할애해 체험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권해드린다. 가격도 3천원으로 저렴하고 체험학습 보고서용으로 제출하기에도 아주 유용하다. 사인펜 등의 도구도 구비되어 있어 아이들이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 꾸미기를 하고 싶어 하는 곳이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컨테이너 박스가 보였다. 제주문화 예술재단에서 진행하는 '아트큐브 공간 여행 사업' 작품이었다. 숲에서 보는 멋진 '유화'라니, 단조로울 수 있는 길목에 부여된 흥밋거리 같아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간식은 숙소와 가까운 곳에서 사 온 전복 김밥! 잠시 비가 멈춘 사이 평상에 앉아 먹는 김밥은 고소하고 들큼했는데 숲 향을 느끼며 맛볼 수 있었다. 바다와만 잘 어울릴 것 같던 전복 김밥은 숲과도 색을 맞춘 듯 조화가 잘 되었으며, 놀러 와서 도시락을 먹는 기분이라 더 좋았던 것 같다.


돌아 나오면 작은 절이 있고 수국이 잔뜩 피어있다. 그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어서 작년에 찍은 사진으로 대체한다. 더 올라가면 약수터와 절물오름에도 오를 수 있다.


크게 둘러 내려오면 연못이 있다.


연못을 둘러보는 사이 비가 마구 쏟아진다. 그럼에도 마음은 왜 이렇게 즐거운 걸까.


비가 내리는 날 숲길이 이렇게 멋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안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아마 올레길을 처음 걸었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우비를 입었음에도 축축하게 젖은 몸과 출발하자마자 젖어버린 신발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비가 오는 날이 주는 그 운치 넘치는 트래킹은 정말 신선했고, 태어나서 처음 느껴 본 감정이었다. 아이가 자라면 꼭 함께 느껴보고 싶었다. 조금 더 자라면 함께 올레길에도 도전하고 싶다.


추운 날에는 우비를 입으면 보온효과를 누릴 수 있지만 찜통인 여름 날씨에는 사실 좀 덥다. 그래도 제주에 갈 때는 항상 우비를 반드시 챙긴다. 변화무쌍한 제주 날씨에 필수 준비물이다. 제주 사람들이 사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우산'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 제주에 내려와 비바람에 우산이 한 개 두 개 여러 차례 뒤집히는 수난을 겪고 난 뒤에는 우산을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산이 소용없음을 깨닫게 된다는 웃음 섞인 정착민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비를 입으면 비교적 몸이 자유로울 수 있어 우산 없이 편하게 걸을 수 있어 트래킹에는 꼭 필요하다. 아이에게는 우비가 조금 커서 등 쪽에 매듭을 지어 입혔더니 요런 귀여운 뒤태가 되었다. 아이도 우비를 입고 숲길을 걸어보는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조금 더웠지만 아주 재미있었다고 하여 엄마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여름에 오면 이 길에도 수국이 피어있을 줄은 몰랐다. 아름다운 수국이 이 곳과도 아주 잘 어울려 멋들어진 절물휴양림만의 수국 길이 펼쳐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절물휴양림의 마지막 산책길이 보인다. 이 길을 걸으면 참 행복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 와 있다니 인생은 꽤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을 이 길을 걸으며 해본 적이 있다. 지금도 그 비슷한 감정이 든다.


아이와 함께 한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공유했다. 함께 보내지 못하는 많은 시간들에 대한 위로를 받는 듯 따뜻했고, 서로의 소중함에 더 감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 곳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와 함께 가고 싶었던 제주 곳곳을 이렇게 하나하나 숙제를 하듯 함께 손을 마주 잡고 다니고 싶다.



가을에 오면 이렇게 떨어진 색색의 낙엽이 반겨주어 더욱 낭만적이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오히려 그냥 평범한 휴양림 같을지 모르지만 촉촉하게 비가 오면 떠오르고 자꾸만 걷고 싶게 만들어주는 이 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가을에도 참 멋진 곳이니 꼭 찾아보시기 바란다.